비욘드치과병원 과천

과천 비욘드치과병원 대표원장 김범수.
감염관리, 진료실 환기설계, 디지털 보철 기록.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고 확인합니다.

코로나19 초기, 치과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었나 — 2020년 2월의 기록

안녕하세요. 치과보철과·통합치의학과 전문의, 김범수 비욘드치과병원 대표원장입니다.

2020년 2월, 저희 병원이 감염병 대응체계 중 가장 높은 단계를 적용했던 때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 시간들을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의료 관계자가 아니신 분은 6번까지 읽으시면 됩니다. 뒤의 세 대목은 요약과 근거 자료, 그리고 다른 병원 원장님들을 위한 정리입니다.


병원이 방역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저희 병원은 2020년 2월 18일에 준비해 둔 대응체계 중 가장 높은 단계를 적용했습니다. 이틀 뒤에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판단이 빨라서가 아닙니다. 그때 쓸 물건과 그때 할 동작을 1년 전에 미리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직원이 한 손으로 N95 마스크를 감싸 얼굴에 밀착시키며 아래쪽 머리끈을 잡고 있는 옆모습. 앞쪽에 마스크를 착용한 다른 직원의 뒷모습이 있다

N95 마스크 밀착 착용 연습. 2019년 10월 11일 촬영


1. 확진자가 다녀가지도 않았는데 왜 환자분이 끊겼을까요

과천에 병원 문을 연 지 1년이 되지 않은 2015년에 메르스 사태가 있었습니다.

저희 병원에 메르스 확진자가 다녀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근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대기실이 비었습니다.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먼저, 감염병이 돌면 환자분들은 병원을 피하십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병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면 안 가는 쪽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시작하면 이미 늦습니다. 유행이 시작된 뒤에 장비를 사고 절차를 만들면 물건은 이미 품절입니다. 직원들은 처음 해보는 동작을 불안한 상태에서 하게 됩니다.

그때 뒤늦게나마 한 준비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서 N95 마스크를 직접 구매했습니다. 메르스는 중동 밖에서는 국내가 사실상 유일한 유행지였고 세계 공급망이 정상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사 오는 방법이 통했습니다.

일부를 쓰고 남은 것은 비상용으로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 마스크를 2020년 초에 꺼내 썼습니다.

2020년에는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가 동시에 같은 물건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시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시기였습니다.

저희는 N95를 쓰고, 그때까지 쓰던 덴탈 마스크는 환자분들께 나눠 드렸습니다. 연세가 있으시거나 감염에 취약하신 분들께 먼저 드렸습니다.

2. 코로나가 아닌 감염병을 대비한 훈련

2015년에 한 것은 마스크를 사 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해 6월에는 진료실에 공기청정기를 한 대 더 놓았고, 오시는 모든 분께 체온 측정과 손소독, 진료 전 구강가글을 부탁드렸습니다. 손이 닿는 곳은 필름으로 덮었고 창문은 수시로 열었습니다.

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장비를 놓고 절차를 바꾸는 일은 했지만 구조를 바꾸는 공사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2019년에 같은 규모의 다른 병원들을 보고 나서야 움직였습니다.

그 경위는 별도의 글에서 도면과 함께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공사가 아니라 그 옆에서 같이 한 일입니다. 리모델링 설계와 병행해 외부 전문가를 모시고 감염관리 교육과 훈련을 정기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해에만 여러 차례였고, 전부 아무 일도 없는 상태에서 한 것입니다.

2019년 10월 11일에는 병원 내부 교육과 동기 부여를 위해 「감염 위기대응 모의훈련」을 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상정한 시나리오는 코로나19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을 통해 번지고 있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놓고, 사람에게는 옮지 않는 병이지만 만약 사람에게 옮는 병이 그렇게 온다면 어떻게 할지를 가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시나리오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훈련이 석 달 뒤에 그대로 쓰였습니다.

이것이 감염관리 훈련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병원체가 올지는 아무도 맞히지 못합니다.

훈련은 특정 병원체에 대비하지 않습니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 사람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대비합니다.

그날은 먼저 장비를 다루는 연습을 했습니다. N95 마스크를 얼굴에 밀착시키는 방법부터 시작했습니다. 개인보호구를 입고 벗는 순서, 레벨 D 방호복과 전동식 호흡보호구 착탈까지 실습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환자분이 들어오시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신 분께 손 소독을 안내하고 장갑을 드립니다. 문진표를 받고 체온을 재고, 방사선실을 거쳐 진료실 체어까지 모시는 과정입니다.

환자 역할은 저희 직원이 맡았습니다.

보호가운과 헤어캡, 고글, N95를 착용한 직원이 비접촉 체온계를 이마에 대고, 마주 앉은 사람이 문진표를 작성하는 모습. 탁자에 손소독제와 마스크·장갑 상자가 놓여 있다

입구에서의 선별 절차 연습. 2019년 10월 11일 촬영, 직원 역할극

이 장면이 석 달 반 뒤에 그대로 쓰였습니다.

마지막 훈련은 그해 12월 12일 「수술실 감염관리 및 총 복습」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교육 내용을 강의로 복습하고, 실습으로는 멸균 방포 전개를 익혔습니다.

즉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위험을 다루다가, 마지막에는 수술 부위를 다루는 데까지 범위를 넓힌 셈입니다.

그로부터 39일 뒤에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메르스 때 사 둔 마스크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를 예상하고 산 것이 아니었는데 코로나19에 쓰였습니다.

준비는 두 번 다 빗나갔고, 두 번 다 쓸모가 있었습니다. 물건은 5년 전에 준비했고, 착용법은 넉 달 전에 훈련했고, 실전은 그다음이었습니다.

3. 병원이 무엇을 하는지 미리 알려드린 이유

10월 훈련은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 영상을 2020년 1월 19일에 공개했습니다.

그 무렵 중국 소식이 조금씩 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 확진자가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그래도 곧 진료실 풍경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대하는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문진이 길어지고, 소독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될 텐데 아무 설명 없이 그러면 환자분들이 놀라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약 확인 문자에 영상 링크를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이런 훈련을 해왔고, 앞으로 오시면 이런 절차가 보일 테니 놀라지 마시라는 안내였습니다.

2015년에 배운 것이 여기서 쓰였습니다. 그때는 병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환자분들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5년 뒤에는 보여드릴 것이 있었고, 보여드릴 방법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인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표됐습니다.

국내에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준비해 둔 대응체계의 1단계를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단계를 적용하는 그 시점에 2·3·4단계 준비를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설 연휴 며칠 뒤, 건물 정기 바닥 청소와 왁스 작업 때문에 오후 진료를 비워 둔 날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새 방역 절차를 몸에 익히는 훈련에 썼습니다.

그때 이미 예약을 취소하시는 환자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도 불안해했습니다. 그래도 몇 달째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아 온 터라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2단계와 3단계는 사실상 동시에 적용됐습니다. 3단계는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분, 최근 해외 입국 이력이 있는 분,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을 다녀오신 분을 별도 동선과 별도 시간대로 분리하는 체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달라진 곳은 진료실 안이 아니라 입구였습니다. 10월에 연습해 둔 바로 그 자리이고, 연습한 순서 그대로였습니다.

문 앞에 매트를 두 장 깔았습니다. 한 장에는 소독액을 적셔 두고 두 장을 차례로 밟고 들어오시게 했습니다. 그다음 일회용 덧신을 신으시고 손을 소독하시게 했습니다.

마스크는 저희가 드렸습니다. 코까지 덮고 와이어를 눌러 얼굴에 밀착시키는 방법까지 안내했습니다.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해외 방문력과 호흡기 증상을 확인하는 문진표를 작성하시게 했습니다.

접수와 대기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도록 안내했습니다.

진료실 안에서도 두 가지를 더했습니다. 진료 전에 가글액으로 입안을 헹구시게 했고, 대기실 의자와 테이블 표면을 소독약품으로 계속 닦았습니다.

소독약이 마르면서 얼룩이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약품이 건조되는 과정이라고 따로 안내해 드려야 했습니다.

이 절차도 1월 31일에 영상으로 찍어 예약 확인 문자로 보내드렸습니다. 열이틀 만에 두 번째였습니다. 두 영상 모두 환자 역할까지 저희 직원이 맡았습니다.

안내 영상을 만들자고 환자분을 촬영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절차가 바뀌면 오시기 전에 알린다. 그때 정한 것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처음 보시면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미리 아시고 오시면 준비된 곳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같은 절차인데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보호가운과 장갑을 착용한 직원이 몸을 굽혀 의자에 앉은 사람의 신발에 파란 일회용 덧신을 씌우고 있다. 옆 탁자에 손소독제와 마스크 상자, 비접촉 체온계와 문진표가 놓여 있다

입구에서 덧신을 신겨 드리는 절차. 2019년 10월 11일 촬영, 직원 역할극

4. 총연습으로 시작한 날

2월 중순, 확진자 숫자는 오히려 안정세로 보였습니다. 2월 초에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에 올라 온 나라가 잠시 걱정을 덜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대로 마무리되리라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점에 마지막 단계인 4단계를 적용했습니다.

유행이 심해져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의 교육훈련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겨울철 독감 유행에 대비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실전이 아니라 총연습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4단계에서는 내원하시는 모든 환자분께 일회용 마스크, 헤어캡, 덧신, 가운, 비닐장갑을 드렸습니다. 대기실에서부터 실제 진료를 받으시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도록 안내했습니다.

의료진은 일회용 수술 가운, 방진마스크, 고글 또는 실드, 덧신을 착용했습니다.

그날은 연습이라는 생각에 보호가운 위에 비닐 덧가운을 하나 더 걸쳤습니다. 규정보다 한 겹 많았습니다. 나중에 이 대목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상태로 진료는 평소처럼 이어졌습니다. 체어 여섯 대가 그날도 다 돌아갔습니다.

구강스캔으로 본을 뜨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구강스캔은 인상재를 쓰지 않으므로 관리해야 할 오염 경로가 하나 줄어듭니다. 이 이야기는 디지털 진료를 다루는 글에서 따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파란 보호가운과 헤어캡,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들이 칸막이로 나뉜 유닛 세 곳에서 각각 진료하고 있다. 바닥에 덧신을 신은 발이 보인다

4단계를 적용한 상태의 진료실. 2020년 2월 18일 촬영

솔직히 그날의 심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대학병원도 아닌데 우리 병원에서 이걸 해보는구나' 하는 낯섦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2006년에 미국 하버드 치과대학 보철과를 방문했을 때 진료실에서 봤던 수준에 이제야 도착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쪽은 치과대학병원이니 개인 병원과 나란히 놓을 대상은 아닙니다. 다만 제게는 그때 본 장면이 기준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상태를 10개월 넘게 유지하게 될 줄은 그날 전혀 몰랐습니다.

다음 날인 2월 19일, 하루 확진자가 20명으로 뛰었습니다. 그다음 날인 2월 20일,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첫 사망자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그전과 결이 달랐습니다. 확진자 수가 늘어날 때와 사람이 사망했을 때는 받아들여지는 무게가 다릅니다.

2월 18일 대구의 31번째 확진자를 기점으로, 그렇게 1차 대유행이 시작됐습니다.

총연습으로 시작한 4단계가 이틀 만에 실전이 됐습니다.

만약 2월 18일이 아니라 2월 20일에 시작했다면, 같은 절차를 사망자 소식과 함께 처음 해봤을 것입니다. 이틀 차이입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그 절차를 대하는 마음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위험이 500미터 앞까지 왔을 때

저희 병원이 있는 곳은 반경 500미터 정도 안에 상가 대부분이 모여 있는 작은 상권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당시 대규모 집단감염의 중심이 된 종교단체의 본부 사무실과 대형 예배당, 각종 사무실과 교육시설이 있었습니다.

2월 25일, 그 시설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날 병원 주변 도로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 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습니다. 조사는 큰 사고 없이 끝났고 관련 시설들은 폐쇄와 철거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래도 지역 주민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위험이 바로 앞까지 왔던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대응 체계가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로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6. 왜 시작보다 유지가 어려울까요

시작보다 유지가 어려웠습니다.

개인보호구를 겹겹이 착용하고 진료하면 체력 소모가 확연히 큽니다. 처음 몇 주는 다들 힘들어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익숙해지는 것도 관리 대상입니다. 익숙해지면 생략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첫날에는 규정보다 한 겹 더 입었고, 몇 달 뒤에는 규정대로 입는지를 점검해야 했습니다.

3월과 4월을 지나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간격 표시를 하고 안내를 계속했습니다. 직원 식사 공간에는 아크릴 가림막을 세웠고, 여러 명이 동시에 먹지 않도록 시간을 나눴습니다.

긴 소파의 양 끝에 노란 테이프로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그 사이 빈 자리에 쿠션이 놓여 있다. 탁자에 손소독제가 있다

대기실 좌석 간격 안내. 2020년 4월 13일 촬영

진료 중 발생하는 에어로졸에 대해서는 체어에 달린 석션 외에 추가 흡입 장비를 도입했습니다. 창문으로 연결한 배관을 통해 에어로졸을 바로 바깥으로 강제 배기하는 방식입니다.

비슷한 개념의 장비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관을 전체적으로 시공해야 해서 도입이 어려웠습니다. 가까운 창문으로 빼는 단순한 구조라 상대적으로 빨리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감염 위험이 있는 환자분뿐 아니라 아말감을 제거할 때도 유용했습니다. 공기 중에 남는 입자에 대해서는 UV-C 공기살균기를 예산이 생길 때마다 늘려 5대를 운영했습니다.

이 두 가지 선택에 대해서는 지금 다르게 봅니다. 국소 배기와 공기살균기는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것도 진료실 전체의 환기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10년 동안 공기청정 장비를 운용하며 확인한 한계와, 그래서 지금 환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환기 설계를 다루는 글에서 실측값과 함께 정리하려고 합니다.

당시 저희 병원이 병원급으로 분류되어 있어서인지 보건소 점검이 잦은 편이었습니다. 점검 항목들을 보면서 앞으로 병원 내 감염관리에 대한 요구가 계속 높아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비상 대응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는 2020년 2월의 공기를 이미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유행이 한창일 때는 모두가 조심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절차가 하나씩 생략됩니다.

저희가 2019년에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2015년 메르스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은 2020년 2월까지 겨우 버텨준 셈입니다.

다음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준비가 끝나 있어야 하는 시점이 유행이 시작된 다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저도 벌써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이 글을 씁니다.

2020년 초기 대응 요약

2015년 메르스 때 병원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으면 환자분들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그때 사 둔 N95 마스크를 5년 뒤에 끈과 코 지지대를 하나씩 확인하고 꺼내 썼습니다.

2019년에는 리모델링과 병행해 감염관리 훈련을 정기적으로 했습니다. 그때 상정한 시나리오는 코로나가 아니었지만, 그 순서가 석 달 뒤에 그대로 쓰였습니다.

2020년 1월에는 절차가 바뀔 때마다 미리 영상으로 알려드렸고, 2월 18일에 총연습으로 시작한 4단계가 이틀 만에 실전이 됐습니다.

시작보다 유지가 어려웠고, 지금 돌아보면 국소 배기와 공기살균기는 진료실 전체의 환기를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기록 — 시간 순서와 근거

시간 순서

시기내용
2015년메르스. 개원 1년 미만. 확진자 방문 없이 내원 급감
2015년N95 마스크 해외 직접 구매. 일부 사용 후 잔여분 비상 비축 → 2020년 초 사용
2015년 6월진료실에 공기청정기 추가 설치. 전 환자 체온 측정·손소독·진료 전 구강가글, 접촉면 필름 커버, 창문 환기 상시화
2019년소독실 → 중앙공급실 리모델링. 월 1회 이상 외부 전문가 교육·훈련
2019년 10월 11일「감염 위기대응 모의훈련」 — N95 밀착 착용, 개인보호구 착탈, 레벨 D·전동식 호흡보호구. 이어서 입구 선별부터 방사선실·진료실까지 전 동선 모의 (상정 시나리오: 아프리카돼지열병)
2019년 12월 12일「수술실 감염관리 및 총 복습」 — 강의 복습, 멸균 방포 전개 실습. 마지막 훈련
2020년 1월 19일10월 11일 훈련 영상 공개, 예약 확인 문자로 안내
2020년 1월 20일국내 첫 확진자
2020년 1월 20일 이후대응체계 1단계 적용, 2·3·4단계 동시 준비 시작
2020년 1월 31일강화된 출입 절차 시행 영상 공개, 예약 확인 문자로 안내
2020년 1월 31일부터2·3단계 사실상 동시 적용(입구 절차 영상 공개일)
2020년 2월 18일4단계 적용 첫날
2020년 2월 19일하루 확진자 20명
2020년 2월 20일국내 첫 사망자
2020년 2월 25일병원 인근 시설 강제 역학조사
2020년 4월대기실 거리두기, 식사 공간 가림막, 국소 배기 장비, UV-C 공기살균기
2020년 10~12월치의신보 연재 4편

표준주의와 단계별 대응의 관계

아래 표의 "표준주의"는 감염관리의 기본 원칙이다. 환자분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모든 환자분께 같은 수준으로 대응한다는 뜻이다.

단계별 대응체계는 표준주의를 기초로 두고 그 위에 상황별 조치를 올리는 구조다. 표준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개념은 치과에서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하는 이유 — 표준주의란 무엇인가에 따로 정리했다.

대응체계 4단계 구성

각 단계마다 적용 시점의 기준이 정해져 있다. 기준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이 체계의 핵심이다. 상황이 벌어진 뒤에 회의를 열어 결정하면 늦고, 결정이 사람에 따라 흔들린다.

단계적용 기준성격
1단계국내 확진자 발생 시점부터 즉시표준주의 적용, 환경소독 강화
2단계국내 확진자 5명 발생 시점부터 즉시능동감시. 입구 출입 절차(소독 매트, 덧신, 손 소독, 마스크 지급, 체온 측정, 문진표)
3단계유증상자 또는 체온 37.6도 이상인 방문자·환자를 발견한 시점부터 즉시고위험 환자 분리 진료 (발열·호흡기 증상, 해외 입국, 확진자 발생 지역 방문). 별도 동선·별도 시간대
4단계국내 사망자 발생 시점부터 즉시표준주의 + 고도관리. 전 내원자 보호구 제공, 의료진 일회용 수술가운·방진마스크·고글 또는 실드·덧신

위 표의 적용 기준은 당시 지침서에 적혀 있던 문구이며, 아래 연재 2편(2단계)과 3편(3·4단계)에 지침서 발췌 상자로 실려 있다. 복장 기준, 진료 지침, 환경관리 항목 전문도 같은 자리에 있다.

2020년 2월 18일의 4단계 적용은 위 기준보다 이틀 빨랐다. 사망자 발생 기준을 충족해서가 아니라 훈련 점검 목적으로 앞당긴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준 시점과 이틀 차이로 맞물렸다.

원문 — 치의신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관리 대응」 (2020년)

당시 표기는 "김범수 과천 연세스위트치과병원 원장"이다. 병원명은 2022년과 2023년에 바뀌었고, 소재지와 대표원장은 바뀌지 않았다.

  1. 중앙공급실 리모델링 및 코로나 발생 초기 대응 (치의신보, 2020.10.28)
  2. 감염관리 교육을 통한 선제적 대응 (치의신보, 2020.11.11)
  3. 코로나19 감염병 고위험 환자의 진료 (치의신보, 2020.12.02)
  4.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하다 (치의신보, 2020.12.16)

기록 영상 2편

두 편 모두 공개 직후 예약 확인 문자로 환자분들께 링크를 보냈다. 화면 자막에 옛 병원명이 남아 있다.

두 편 모두 원장과 직원이 역할을 나누어 진행한 훈련·안내 영상이며, 실제 환자분은 촬영되지 않았다.

1. 「과천연세스위트치과병원 감염관리 모의훈련」 (유튜브, 2020.1.19 공개)

2019년 10월 11일 훈련을 촬영한 것이다. 공개는 2020년 1월 19일이다. N95 밀착 착용, 개인보호구 착탈 순서, 레벨 D 방호복과 전동식 호흡보호구 실습, 입구 선별부터 방사선 촬영과 진료실 응대까지의 전 동선 모의훈련이 담겨 있다. 편집은 Animoto로 했고 배경음악은 서비스 제공 음원이다.

2. 「과천 연세스위트치과병원 강화된 감염방지대책 시행 영상」 (유튜브, 2020.1.31 공개)

입구에서 시행한 출입 절차를 순서대로 담았다. 소독 매트, 일회용 덧신, 손 소독, 마스크 지급과 밀착 착용 안내, 비접촉 체온 측정, 해외 방문력·증상 문진표, 원내 마스크 유지.

두 영상의 설명란도 동시대 기록이다. 첫 편에는 외부 전문가를 모시고 전 직원 대상 정기 교육을 진행했다는 것과, 진료실·소독실을 정비하고 비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둘째 편에는 입구 방역 절차가 순서대로 안내되어 있고, 2019년부터 정기 교육과 훈련을 해 왔다는 문장이 들어 있다. 이 글의 서술과 같은 내용이 2020년 1월에 공개된 영상에 붙어 있다. 게시일은 외부 기록으로 남지만 설명란은 나중에 고칠 수 있는 칸이므로, 동시대 기록으로 확실한 것은 영상과 게시일이다.

게시일이 외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의 다른 자료는 저자가 보관한 사진과 문서이지만, 두 영상의 공개 시각은 유튜브에 기록되어 있어 제3자가 확인할 수 있다. 첫 편은 국내 첫 확진자 발표 하루 전, 둘째 편은 그로부터 11일 뒤다.

영상 속 레벨 D 방호복과 전동식 호흡보호구는 훈련 장비다. 위 표의 4단계 상시 복장 기준과 다르다.

당시 안내문 — 네이버 블로그

두 영상과 함께 환자분들께 안내한 글이 두 편 남아 있다. 두 편 모두 2022년에 내용을 갱신했기 때문에 현재 표시되는 작성일은 2022년이다. 원래는 2020년 1~2월에 올린 글이며, 최초 공개 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위 두 영상의 유튜브 게시일이다.

주소는 현재 병원명 기준 계정이다. 2020년 당시 안내에 쓰인 blog.me 단축 주소는 네이버가 서비스를 종료해 더는 닿지 않는다. 위 주소가 같은 글의 현재 자리다.

두 글에 임베드했던 영상은 삭제되어 현재는 재생되지 않는다. 영상은 유튜브 쪽만 남아 있다.

이해관계 고지

감염관리 자문. 4단계 적용 시점의 판단과 감염관리 교육훈련은 감염관리 교재를 저술하고 교육을 담당해 온 김영복 교수(DOI MSO)의 지도로 진행했다.

이 관계는 2020년 당시에도 공개되어 있었다. 위 훈련 영상의 설명란에 교육을 진행한 외부 전문가의 이름이 적혀 있고, 2019년부터 정기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다는 사실도 함께 적혀 있다. 뒤늦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어 둔 것이다. 2019년 중앙공급실 리모델링 설계 단계부터 지금까지 배관과 환기를 포함한 기술 영역에서 자문을 받고 있다. 금전 거래는 없으며, 자문료나 강연료를 받은 사실도 없다. 다만 본원의 사례가 해당 업체의 홍보 자료와 매체 기고에 소개되고 있다.

이 글은 특정 업체의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권유하지 않는다.


실무 메모 (개원의를 위한 정리)

같은 준비를 하시려는 원장님을 위한 여덟 가지 (펼쳐서 보기)

1. 결정적이었던 것은 지침서가 아니라 훈련 주기였습니다. 문서는 며칠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2020년 2월에 차이를 만든 것은 그 문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던 한 해 동안 정기적으로 반복한 훈련이었습니다. 훈련이 없으면 지침서는 유행이 시작된 날 처음 펼쳐 보는 종이입니다.

2. 적용 기준은 미리 숫자로 정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확진자 1명 발생 시", "사망자 1명 발생 시"처럼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사건으로 기준을 정해 두면 그날 회의가 필요 없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매번 원장 개인의 판단으로 넘어오는데, 판단은 피로에 비례해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3. 실전 이틀 전에 총연습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입니다. 2월 18일에 4단계를 켠 목적은 점검이었습니다. 유행이 심해져서 켰다면 첫날의 혼란을 실전에서 겪었을 것입니다. 켜는 시점을 앞당기는 비용은 소모품과 체력이고, 늦추는 비용은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4. 장비는 그때의 최선이었고,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국소 배기 장비와 UV-C 공기살균기 5대는 2020년의 조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둘 다 진료실 전체의 공기를 교환하지는 못합니다. 장비를 늘리는 방향과 환기 설계를 바꾸는 방향은 다른 문제이고, 이 판단 과정은 환기 설계를 다루는 글에서 실측값과 함께 정리하려고 합니다.

5. 4단계는 상시 운영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보호구를 겹겹이 착용한 상태의 체력 소모는 상당합니다. 10개월을 유지하며 확인한 것은, 고강도 단계를 상시 기준으로 삼는 대신 평상시 기준을 한 칸 올려 두고 필요할 때 단계를 올리는 구조가 지속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6. 지역 조건은 지금 확인해 두실 수 있습니다. 병원 반경 500미터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그해 2월에 실질적인 위험 변수였습니다. 대형 집회시설, 요양시설, 학교, 물류센터가 도보 거리에 있는지는 지금 확인해 둘 수 있는 정보입니다.

7. 비축은 예측이 아니라 완충입니다. 2015년에 산 마스크가 2020년에 쓰인 것은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다만 다음에 무엇이 필요할지 맞히려는 시도는 대체로 실패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비축의 목적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공급망이 끊긴 몇 주를 버티는 것입니다. 그 몇 주가 절차를 정비하고 대체 경로를 찾는 시간이 됩니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가 따라옵니다. 첫째, 보관 물품에 유효기간과 구입 시점을 적어 두고 주기적으로 점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스크는 끈과 코 지지대가 먼저 열화합니다. 둘째, 평상시 소비 물량과 비상 비축을 나누어 두어야 실제로 남습니다. 섞어 두면 결국 다 씁니다. 셋째, 국내 공급이 끊길 때 해외에서 사 오는 경로는 지역 유행에서만 작동합니다. 세계적 유행에서는 그 경로도 같이 막힙니다.

8. 절차를 바꾸시면 오시기 전에 알리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절차라도 도착해서 처음 보시는 것과 미리 아시고 오시는 것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저희는 두 번 다 영상으로 찍어 예약 확인 문자에 링크를 넣었습니다. 촬영은 휴대전화로 충분하고, 편집은 자막 몇 줄이면 됩니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데 문의 전화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촬영에서 한 가지만 지키시면 됩니다. 환자 역할은 직원이 맡으십니다. 안내 영상은 절차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 실제 환자분이 필요하지 않고, 촬영해 두면 동의와 보관 문제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저희는 두 편 다 직원이 역할을 나누어 찍었고, 그래서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2015년에 배운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병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면 안 오시는 쪽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보이게 하면 됩니다.



2020년의 기록을 두서없이 정리했습니다. 부족하나마 같은 준비를 고민하고 계신 원장님들과, 병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환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범수 비욘드치과병원 대표원장

경기도 과천시 비욘드치과병원. 2014년 개원 이후 소재지와 대표원장은 변경된 적이 없으며, 기관명은 과천 연세스위트치과병원(2014년), 과천 연세치과병원(2022년), 비욘드치과병원(2023년) 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진료 예약과 상담은 beyonddh.com에서 받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